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 악기장(장구·북) 서인석 장구 명인. 3대째 손으로 장구와 북을 깎는 국내 유일의 전승 기능 보유자입니다. 서인석 명인의 장구는 한 쌍을 완성하는 데 무려 5년에서 길게는 10년이 걸립니다. 통나무를 통째로 깎고, 2~3년간 건조하는 등 모든 공정이 손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서인석 명인은 악기장일 뿐만 아니라 설장구 연주자로도 이름 높습니다. 설장구에서 설이란 우두머리란 뜻으로, 장구잽이 중에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개인 전주대사습놀이에서 두 번이나 장원을 차지하고, 대학에서 교수에게 장구 장단을 가르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박사 과정을 위해 일본 유학을 권유받았지만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는데요. “우리의 기술을 일본에 주는 격”이라는 애국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전통을 고수하는 서인석 명인의 장구는 공장제 장구와 가격 경쟁이 거의 안 된다고 합니다. 고난의 시잔을 거쳐야지만 나오는 장구이기에 장구 금액 또한 적지 않다고 하는데요. 서인석 명인은 왜 굳이 힘든 전통 방식을 고집하는 걸까요?
지금부터 장구와 북에 평생을 바친 명인의 이야기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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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석 장구 프로필

- 이름: 서인석 (徐仁錫)
- 생년: 1949년 (나이 만 76~77세, 2026년 기준)
- 직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 악기장(장구·북) 명인
- 가업: 3대째 전통 국악기 제작
- 소재지: 전라북도 정읍
- 학력: 대학(국악 전공) 및 석사 과정 수료
- 주요 활동: 악기 제작, 설장구 연주, 문화 전수
서인석 명인 장구 3대 가업 내력

서인석 장구 가업은 할아버지 서영관 명인(1884~1973) 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동네 훈장이셨고, 마을의 세시풍속 행사를 맡아 하셨습니다. 그때마다 풍장, 즉 풍물놀이가 빠지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악기를 만들고 연주하는 일이 집안의 일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서남규 명인(1924~2005) 시대에 이르러 무형문화재 제도가 생겼습니다. 아버지는 1996년 3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2022년 12월엔 아들인 서인석 명인 자신이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 악기장(장구·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재 그는 전통 기법으로 손수 장구와 북을 만드는 유일한 전승 기능 보유자입니다. 현재는 아들 서창호 명인이 대표로 100년의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나무, 그리고 극복한 시련

하지만 가업을 물려받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서인석 명인이 고등학교 1학년이던 해, 집안에 큰 시련이 닥쳤습니다. 전답과 집까지 저당 잡혀서 사들인 대형 트럭 7대 분량의 나무가 통째로 사라진 것입니다. 가세가 완전히 기울었고, 그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공무원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1년 뒤, 수소문한 끝에 나무를 훔친 범인을 잡았지만, 이미 돈은 노름으로 모두 탕진한 뒤였습니다. 범인을 잡았다는 사실로 오랜 미련을 정리 할 수 있었을까요. 그 후 서인석 명인은 공무원을 그만두고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왔습니다.
힘든 시간을 견디며 가업을 이어간 그때의 경험이, 이후 전통 장인으로서의 굳은 결의를 만들었습니다.
서인석장구 제작 과정 시간

정읍 장구는 통나무를 토막 내지 않고 통째로 깎아 만들기 때문에 울림이 특히 맑고 청아합니다. 작업은 나무 선별부터 시작됩니다.
좋은 오동나무 고목을 고른 뒤 자르고, 깎고, 다듬습니다. 30~50년 이상 오동나무만 재료로 사용 하고 3년 이상 노천에서 건조를 한 후에만 악기를 제작합니다. 그래야지만 대패질이 수월해지고 소리가 맑게 난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죽을 골라 씌우고 마무리 조율을 하면, 비로소 하나의 장구가 완성됩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한 쌍의 장구가 나오기까지는 최소 5년, 길게는 10년이 걸립니다.
이렇게 까지 전통방식을 고집을 하는 이유는 선대활동의 전승을 목적에 두고 그것을 보존하고 지키려는 서인석 장인의 뚝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인석 장구 가격 얼마일까?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는 서인석 명인 장구의 가격. 정확한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장구 한 쌍이 완성되기까지 5년에서 10년이라는 시간과 장인의 손길이 들어가기 때문에 적지 않은 금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작 과정만 보더라도 좋은 오동나무 선별, 2~3년간의 건조, 수백 번의 대패질과 다듬기, 마지막으로 가죽 선별과 조율까지. 이 모든 과정이 손으로 이루어집니다.
시중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장구는 기계로 빠르게 생산됩니다. 실제 장구 가격은 하이브리드 장구가 9만 원대, 매화고고 장구가 30만 원대까지 다양하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반면 서인석 명인이 5~10년에 걸쳐 손으로 빚은 전통 장구는 단순한 가격 경쟁이 아예 안 됩니다. 한 쌍의 장구가 완성되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장인의 혼이 깃들기 때문에, 그 가치는 금액으로 환산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서인석 장구 가격 1,000만 원이라고 예상 한들 전국의 국악 연주자들은 더 나은 공명과 전통의 가치를 찾아 정읍을 찾는다고 합니다.
서인석 무형문화재 12호 악기장 철학
서인석 명인은 악기를 다룰 수 있어야 원하는 공명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며, 악기장도 연주를 할 줄 알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서인석 명인은 연주자 시절 박사 과정에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는 국악기 제작 박사 과정이 없었기에 주변에서 일본 유학을 권유했지만, 그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우리의 기술을 일본에 주는 격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현재는 석사 논문으로 장구 제작 기법과 용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며, 후학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서인석 장구 제작소
현재 서인석 장인은 정읍 샘고을시장내 전승명가 라는 이름의 개인작업실에서 장구를 직접 제작하며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소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태평6길 6-19
연락처 : 063-532-8944

서인석 장구 근황 후계자는?
서인석 명인에게는 네 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그들도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작업을 자연스럽게 보며 자랐습니다.
지금은 모두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장구를 깎고 연주하는 데 전혀 거부감이 없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오겠다는 자식들이 있어 힘이 된다고 말하는 서인석 장인인데요.
장남이건 막내건 가업을 물려받는 것에 거부감이 없어 그 자체를 이게 복입니다.” 그의 말에서 가업에 대한 자부심과 따뜻한 가족애가 느껴집니다.
전라북도 정읍, 호남농악의 고장. 그곳에서 서인석 명인은 3대째 손으로 장구와 북을 깎으며 전통의 맥을 잇고 있습니다. 시련을 극복하고, 편견에 맞서 학업을 이어갔으며, 설장구로 우리 음악의 흥을 울립니다.
공장제와의 가격 경쟁에서 밀려도, 일본 유학을 거절해도 그는 오직 ‘전통을 지킨다’는 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의 손끝에서 5년, 10년에 걸쳐 탄생하는 장구 한 쌍에는 시간과 인내, 그리고 장인의 혼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앞으로도 서인석 명인과 그의 네 아들이 이어갈 전통의 울림을 응원합니다.